Nouveaute’s Playlist #02

내가 사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는 참 희한하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문을 열면 눈 앞에 엘리베이터 대신 1층 주차장이 보인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서는 옆쪽 통로로 다시 슬쩍 들어가야 한다. 즉, 코너를 돌아야만 엘리베이터가 보인다는 뜻이다.

내가 이 엘리베이터를 굳이 ‘희한’하다고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이 ‘미로같은 구조’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그 빌어먹을 타이밍’ 때문이다. 1년 반동안 하루가 멀다하고 유심히 분석했는데, 항상 내가 코너를 도는 순간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힌다. 처음에는 문이 반쯤 닫히려는 순간 뛰어가기도 해보았다. 그런데 이 엘리베이터는 답답하게도 느려터져서 버튼이든 발이든 그냥 무시하고 문을 닫는다 — 그래서 급하게 엘리베이터를 잡으려고 발을 집어넣은 거주자들이 되려 기겁하고 발을 빼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래서 또 한동안은 문을 열고 통로를 질주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앞에 정신없이 도착해보면, 엘리베이터는 항상 R — 루프탑 꼭대기 — 에 위치해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원하는 때에 엘리베이터가 G 층에 도착해있지 않다는 사실이 짜증날 일까지는 아니어도, 솔직히 불편했다. 나는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은데 왜 엘리베이터는 나에게 맞춰 오지를 않는 것인가. 

결국 3학년 첫 주가 시작하고 난 뒤 며칠동안은 계단을 이용해보기로 했다. 엘리베이터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으면 내 힘으로 먼저 집까지 올라가겠다! 하면서 말이다. 무려 5층까지 헉헉대고 올라가기를 몇 주 동안 반복하다보니 남는건 후들거리는 다리뿐이더라. 너무 피곤해진 나머지 중간에는 조금 더 잔머리를 써서 3층까지 올라간 뒤 엘리베이터를 잡기로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 싶겠지만.) 그런데 이게 왠걸? 3층까지 올라가보니 이 쪽 라인 엘리베이터가 고장나서 당분간 보수 중이란다. 그래서 또 한동안은 식당 앞 5번 라인 엘리베이터를 타게 됐는데, 아파트 구조가 워낙 미로같아서 한 2주동안은 매일 집을 못찾아가고 헤맸다. 결국 귀가시간은 훨씬 더 늦어지고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이 발생했다.

모든걸 내려놓은 지금은 얌전히 엘리베이터의 문을 열고 느긋하게 코너를 돌아 엘리베이터를 마주한다. 그대가 R 에 있든 또는 B2 에 있든, G에 올 그대라면 결국에는 올 것이라고. 아, 물론 올라가려는 내 버튼을 무시하고 B2 에 있는 누군가를 만나러 쌩 하고 내려갈 때는 형용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을, 아주 조금은 느끼곤 한다 — 그대가 아무리 조건 따지는 If (A = true)  Then B Else C End If 의 존재로 프로그래밍되어있다 해도 말이다.

길고 긴 서론을 지나, 오늘 소개할 세 곡은 “뾰루퉁해진 내 손을 잡아주는 따뜻한 노래들”이다.

‘어떤날’을 좋아해, 넌 누굴 좋아하니?
우리 함께 흥얼거릴까 음
꿈이 아니었기를 멀리 가지 않기를
생각하면 늘 내 옆엔 좋은 사람 많았어
맘에도 없는 말은 이제 하지 말자 
“살다 보면 말이야…” 아이처럼 불꽃놀이를 하고 싶어
소중한 건 변해갈수록 내 곁에 변함없는 것
내 가슴에 껴안고 살고 싶어

우리 그렇게

첫번째 곡은 토이 7집 <Da Capo> 에 수록된 “우리” 라는 노래다. 찾아보니 보컬, 작사, 작곡 모두 유희열 단독이고 편곡만 페퍼톤즈의 심재평과 공동으로 한 듯하다. “뜨거운 안녕” 의 2014년 버젼 같은 노래. ㅎㅎ 

흥미로웠던 가사는 “‘어떤날’을 좋아해, 넌 누굴 좋아하니? 우리 함께 흥얼거릴까 음” 이 부분이다. 실제로 유희열은 알쓸신잡에서 무인도에 간다면 자신의 인생 음반인 조동익 – 이병우의 “어떤날” 앨범을 들고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투하트 리메이크 (어떤날 – 출발) 를 통해 어떤날을 처음 알았지만, 유희열 등 당시의 신인 아티스트들에게 어떤날은 음악적 우상이었을 것이다. 이런 그가 이 노래를 “함께 흥얼거릴까” 라고 제안하는건, 그에게는 간접적인 고백일 것이다. 인생의 동반자에게 인생의 음반에 대해 얘기하는 것. 낭만적이다 ㅎㅎ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 굽이 뜨내기 세상(世上)

그늘진 심정(心情)에 불 질러 버려라

두번째 곡은 가을방학 1집 <가을방학>의 수록곡 “속아도 꿈결” 이다. 이상을 연구하다 알게 된 노래인데, 곡의 마지막에 이상의 소설 <봉별기> 마지막 구절이 그대로 들어가있다. 

<날개>가 ‘나’와 ‘아내’의 자의식의 갈등을 그린 것이라면 이 <봉별기>는 작품 속의 금홍과의 만나고 헤어짐을 서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연구에 의하면 금홍과 3년간의 결혼생활이 이상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고 한다. 소설속에서 금홍과 이상이 서로 노래 한마디씩하며 헤어지는 장면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그 노래가 궁금했서 인터넷으로 찾아보았었다. 독자들도 궁금해하지 않을까하여 링크해 놓았으니 한 번쯤 찾아가 보시길 바란다. 소설은 이별주를 마신 금홍이 내가(작품속 이상) 한 번도 들은 일이 없는 구슬픈 창가를 부르는 것으로 끝난다.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 굽이굽이 뜨내기 세상 그늘진 심정에 불 질러 버려라 운운”하는 가사다. 속이는 사람도 속는 사람도 꿈을 꾸는 듯이 일생동안만 산다. 어차피 우리는 세상의 뜨내기어라,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만남과 이별을 간단명료하게 끝낼 수 있었는가…… 사랑 참 모를 일이다. 2017년. 4월. 어느 봄날.

핑크바나나, 이상 단편소설 봉별기. 책 소개 中. 리디북스

이상이 사랑한 여자 금홍은 기생이었다. 이상은 왜 금홍을 사랑했을까? 그것보다 더 궁금한건, 도대체 금홍은 왜 이상을 사랑했을까?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면서도 그들은 사랑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그렇게 만남과 이별을 간단명료하게 시작하고 끝낼 수 있었던걸까. 시작과 끝은 중요하지 않고, 결국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 참 모를 일이다.

젊음의 아픔과 그 침묵들을 사랑해
다시 피어나기에 

고요한 이 순간 내 모든 것을 느껴
고독의 기쁨을 알겠어
푸른 밤 야윈 손에 잡혀온 것은
빛인가 어둠인가

세번째 곡은 온유의 첫 솔로앨범 <Voice> 의 타이틀곡 “Blue” 다. 기말 기간인지라 플레이리스트를 한 주 미루다 우연히 이런 곡을 마주하게 되서 기쁘다. 아침에 시험을 보러 가는 버스에서 들었는데, 머리가 가사를 이해하기 전에 이미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이 노래는 죽음을 결심한 사람의 노래구나, 그렇게 직감적으로 이해했다. 

노래에 장조가 한 번도 없는 것도 그렇지만 이상하게 나는 “하지만 내 갈 길 알고 있다면 두려워할 것은 없으니” 에서 죽음에 대한 화자의 다짐을 언뜻 느꼈다. 낮에 반짝이던 바다가 밤에 칠흑처럼 어둡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화자는 일반적으로 불안이나 두려움을 느껴야 하건만, 그 혹은 그녀는 더욱 강렬하게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 지 깨닫고 있다. 문자 그대로 읽으면 희망이 되어야 하건만, 왜 나는 이 문장을 절망의 끝으로 느끼는걸까. “푸른 밤, 야윈 손에 잡혀온 것” 은 나를 지금의 이 고통에서 구원해줄 빛, 혹은 나를 영원한 심연으로 데려갈 어둠이다.

작사가를 찾아보니 SM 에서 좋은 가사를 많이 쓰기로 유명한, 그리고 샤이니 노래 가사를 많이 담당했던 kenzie 였다. 종현의 솔로 수록곡인 혜야의 가사도 이 작곡가가 썼는데, 그래서 어쩌면 이 노래가 떠나간 이를 생각하는 kenzie 만의 추모방식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 실제로 뮤비에서도 추모곡을 상징하는 요소들이 몇몇 보이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다.

온유의 목소리도 예전보다 한 층 더 성숙해졌다. 어떤 순간에는 그가 존경하고 따르는 김연우의 목소리와 창법이 너무나도 명백하게 드러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만의 소년스러운 목소리가 노래의 곳곳에 남아 온유만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팬덤 내에서는 시기와 앨범의 컨셉 그리고 팬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감정선 등을 두고 말이 많던데, 같은 아이돌 팬으로서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모든 논란을 빼고 음악만 평가했을 때 충분히 추천할 만한 높은 퀄리티의 곡이라 생각한다. 이 곡이 지금처럼 이렇게 냉담히 외면당할 수준의 곡은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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