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uveaute’s Playlist #01

기억나지 않는 이번 주의 어느 아침, 철학자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를 읽다 그만 마음이 메여 조용히 책을 닫았다. 누군가는 죽음 속에서도 삶을 찾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삶 속에서 죽음을 찾는다. 그리고 추위는, 우리가 그들을 떠난건지 아니면 그들이 우리를 떠난건지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회한과 행복이 무작위로 교차하던 이번 주에 내가 자주 듣던 노래들을 소개하려 한다.

너의 이름 노래가 되어서
가슴 안에 강처럼 흐르네
흐르는 그 강을 따라 나를 버리면
너를 다시 볼 수 있을까

강은 흘러흘러 사라져만 가네

첫 번째 곡은 김윤아의 4집 앨범 <타인의 고통>에 수록된 ‘강’ 이다. 김윤아는 이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의 작사, 작곡, 편곡에 참여했으며 오토튠은 일절 담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말한다. “교육이 잘못됐기 때문”에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무뎌졌다고.

그는 “옆에 있는 아이를 짓밟고 올라가야 최고라고 하고, 공부를 못하는 아이는 이상하다고 한다. 그렇게 옆의 친구가 아픈지, 행복한지 모르게 살아가도록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것” 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는 모두 ‘유리’처럼 나약하고 그래서 위로받고 싶은데, 그것이 수월하지 않다”며 “타인의 고통을 공감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 사회가 모른 척 하라고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어야 개인의 삶도 조금 더 행복해질 것이라 믿는다.

출처: 4집 ‘타인의 고통 내고 돌아온 김윤아 “나만 행복하면 되는 걸까… 음악 하는게 부끄러웠어요”

아, 바람에 흩날리는구나
아, 이슬에 젖어가는구나

두 번째 곡은 종현의 소품집 “이야기 Op. 1” 에 수록된 ‘산하엽’ 이다. 내 베스트 프렌드는 중학교 때 속칭 ‘샤종현빠’ 였다. 친구의 영향으로 나는 샤이니의 열혈팬까지는 아니었지만 늘 그들의 노래 혹은 라이브를 종종 찾아봤고, 2015년 쯤에 우현이 종현의 미발표곡 ‘산하엽’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왜 이렇게 좋은 노래인데 공식음원이 없냐며 툴툴대던 기억이 난다…)  그때서야 나는 기획된 케이팝 아이돌 그룹의 멤버 종현이 아닌 가수 종현, 아티스트 종현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깊은 슬픔마저도.

돌이켜보면 그는 항상 팬들에게, 그리고 리스너들에게 도와달라는 구조요청을 보냈다. 자신의 가장 깊은 곳을 마주한 그는, 그 혼란스러운 감정을 실낱같은 희망과 함께 선율이라는 종이배에 담아 절망이라는 망망대해 위에 띄웠던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바닥에서 케이팝 보이밴드 멤버를 온전한 한 인간 혹은 존재로 바라보는 사람보다는 상품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더 많다. 아이돌 가수가 진지하게 뭘 하려고만 하면 예능에서 ‘아티스트병’ 운운하며 낙인을 찍어버리는게 현실이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돌 가수 종현의 인기’는 그가 살아있을 때는 부와 명예를, 그가 떠나고 나서는 평소에 케이팝 아이돌에 관심도 없던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기회를 제공했다. 어느 쪽이든 그건 과연 종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타인의 관점에서 볼 때 아주 높은 곳에 서있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자신만이 볼 수 있는 깊은 우물 그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 그 중간에 가만히 앉아 양극단에 위치한 자신을 돌아보며, 끝없이 나르시시즘과 자기혐오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외로이 무력감에 빠졌을 그에게 깊은 애도를…

각설하고, 예전에는 종현의 검은 종이배 — 산하엽, 놓아줘, 엘리베이터 등 — 를 종종 건져올리곤 했다. 그런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가 띄운 수많은 검은 종이배들 속에 자리한 하얀 종이배들을 건져올리기 시작했다. 1000, U & I, 우린 봄이 오기 전에, Love is so nice, 우주가 있어 등… 왜 이렇게 갑자기 밝은 노래가 듣고 싶어졌을까. 사유의 홍수 속에 그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지키려 발버둥친 것은 어쩌면 검정 종이배가 아닌 이 하얀 종이배들 아니었을까? 그가 온 힘을 다해 띄워올린 희망이 오랫동안 나를 따뜻하게 안아준다. 

아직 뜨겁잖아.

세 번째 곡은 힙합듀오 리쌍의 정규 7집 앨범 <Asura Balbalta> 의 수록곡 ‘죽기 전까지 날아야 하는 새’다. 아수라 발발타는 예전에 한참 유행하던 ‘비비디바비디 부’ 같은 단어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기를 염원하며 읊는 주문과도 같은 말이라고 한다. 리쌍은 에픽하이와 같은 무브먼트 크루였기 때문에 4집때부터 종종 즐겨듣곤 했는데, 어릴 때는 6집을 좋아했던 반면 지금은 위 노래가 수록된 7집과 8집 <Unplugged>를 좋아한다.

<이방인>의 저자 알베르 까뮈는 에세이 <시지프 신화> 에서 시지프 신화와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삶과 운명이 비극임을 자각하고 통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단순한 종교적 희망 혹은 자살은 해결책이 아닌 도피일 뿐이라고 덧붙인다. 대신 그는 우리가 삶이라는 비극을 통찰하는 집요함을 가지고, 그 비극 속에서 살아남아 삶을 체험해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래야만 자신의 운명 그리고 쳇바퀴와도 같은 형벌을 내린 신의 의지보다 한 차원 더 강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리쌍이 말한 죽기 전까지 날아야 하는 새는 쉴 새 없이 바위를 굴리고 떨어뜨리는 시시포스 / 시지프의 운명을 가진 인간에 대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곡의 마지막 가사, “아직 뜨겁잖아.” 는 우리네 삶의 비극성을 통찰하는 문장이자 동시에 그 삶을 헤쳐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문장이다. 이 마지막 한 줄의 가사는, 그 앞 줄에서 명시한 삶의 비극성을 전복하고 화자를 비극의 주인공에서 신화적 영웅으로 재탄생시킨다.

나도 참 멍청하지
너의 모든 걸 알고 싶어
나도 참 염치없지
너의 전부가 되고 싶어

하지만 자유롭게
저 멀리

세 번째 곡은 곽진언의 신곡 ‘자유롭게’ 다. 누군가를 사랑하다보면 그 사람을 온전히 소유하고 싶어한다. 그 또는 그녀가 옆에 머물러 있는것에 그치지 않고, 이렇게 했으면 좋겠고, 저렇게 했으면 좋겠고, 자꾸만 바라게 된다. 사실 그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런데 곽진언은 상대방을 구속하는 대신 “하지만 자유롭게”를 외친다. 언제나 그대 편이기에 그대의 선택, 그대의 자유마저도 존중하는 사랑.

그도 마냥 성자 혹은 ‘쿨남’인건 절대 아니다. 그는 (염치없고 멍청한 생각이지만) 사랑하는 상대방의 모든걸 알고 싶고 그 혹은 그녀의 전부가 되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상대방에게 자유롭게, 네가 가고 싶던 곳으로 천천히 가면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유롭게’는 사랑의 윤리학이다. 어떤 사랑이 올바른 사랑인가에 대한 질문에 그는 명쾌한 해답을 느린 템포와 길지 않은 가사에 녹여냈다. 아티스트 곽진언은 그에게 주어진 길을 아주 잘 걷고 있다. 그는 오늘 역시 그렇지만 내일은 더욱 더 음악적으로 기대되는 가수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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