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여행 02. 대림미술관 & 코코 카피탄

이상의 집을 나와보니 통인동 골목이 새롭게 보인다. 처음에는 이상의 집을 찾겠답시고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죄다 무시했고, 집 안에서는 베란다 높이 서서 그저 관조하던 곳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내가 바라만 보던 곳에 직접 들어와있다는 느낌이 든달까. 골목에 위치한 집과 표지판 하나하나가 고유하게 느껴지고 모든 풍경 하나하나가 눈을 통해 머릿속으로 들어와 재해석된다.

예쁘게 자란 담쟁이덩굴을 지나가면 작은 책방들이 하나씩 나온다.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간다고, 젊을 때 종로에 몇 번이고 와서 이미 새로울 것이 하나 없다고 생각하는 엄마를 끌고 책방에 들어왔다.

엄마가 나 닮았다며 내 방에 걸어주고 싶다고 했던 액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소하게 뿜었다.

이상의 집이 위치했던 통인동에서 반대편인 통의동까지 걷다보면 이곳이 21세기 서울인지 20세기 경성인지 아직도 조금 헷갈릴 때가 있다.

그렇게 동네를 구경하며 걷다보면 어느새 대림미술관이 나온다. 누가 봐도 코코 카피탄 전시하는 곳이 맞다 할 정도로 현수막이 크게 걸려있다.

아슬아슬하게 정각에 도착한 덕분에 3시 도슨트 투어에 참여할 수 있었다. 엘에이 미술관을 가도 그렇지만, 아무리 모바일 투어가 잘 형성되어있어도 도슨트 투어의 현장감과 임팩트를 따라갈 수 없다. 마치 e-commerce 가 오프라인 스토어를 완벽하게는 대체할 수 없는 것처럼.

대림미술관 담장에도 크게 걸려있는 이 작품은 영민하고 당당한 여성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남녀 모두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워하는 모습이 담겨있는것이 매우 마음에 들면서도, 여자가 관람자를 쳐다보지 않았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하는 1%의 아쉬움이 든다. (존 버거 – 다른 방식으로 보기 참고) 그래도 여러모로 정말 멋있는 사진이다. 내 방 포스터 옆에 같이 걸어놓고 싶을 정도로 색감부터 구성 그리고 사진에 담긴 뜻까지 전부 마음에 든다.

모델의 어린 시절 꿈을 사진 속에서 실현시켜준 코코에게 박수를.

우리는 그저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야.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회에서 다른 의미로 가장 큰 충격을 받았던 작품. 학기 중에 이 옷이 비벌리힐즈의 구찌 매장 한 구석에 잘 개어져있는 모습을 보았던 터라, 전시회 액자 속에서 이 옷을 다시 체험한다는게 참 묘했다. 어딘가에서 가격표가 달린 채 팔려나가는 상품은 다른 어딘가에서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예술작품이 되고, 또 그 반대가 되고. 결국 예술과 예술이 아닌 것의 기준은 무엇이 되는가. 마르셀 뒤샹의 소변기와 같은 또 하나의 포스트모던 작품이다.


한동안 내 카카오톡 배경화면이었던 사진. 예술가라는 타이틀을 달지 않고도 누구나 앤디 워홀같이 멋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무엇이라 불리우든간에 결국 그 본질은 같기 때문이다.

그녀의 손글씨에는 왜인지 모르게 고독과 절박함이 독창적인 형태로 묻어나온다. 위의 손글씨 작품들은 그녀가 죽음을 생각하던 시절 만들어낸 것들이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죽지 않고 도약을 이뤘다. 죽음의 문턱에서 아무도 몰래 삶을 간절히 소망할 때의 그 폭발성. 구찌도 그걸 포착했던걸까.

그녀의 작품에는 유난히 파란색이 많이 등장한다. 그녀가 생각한 “가장 완벽하고 순수한 파랑” 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것은 과연 정말로 파란색일까?

그녀는 입을 통해 하지 못한 말이 많았기에 예술계로 들어가 작품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아까 만난 이상 선생이 떠올랐다.

이건 이번 전시회에서 내가 무의식중에 가장 끌려했던 작품. 아래 작품 설명에도 소개가 되어 있지만, “모든 것이 파괴된 이후에야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될 수 있다” 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다.

엄마는 전시회가 끝나고 나서 자기 수준에서는 조금 유치한 전시회였다고 했지만, 코코도 어린 시절부터 타지에서 유학을 했다는 점이 조금 짠했다고 한다. 엄마는 코코의 작품 안에서 나의 모습을 본걸까.

미술관의 가장 꼭대기 층에 올라가면 이렇게 수영장처럼 생긴 작품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실제로 보면 수영장을 바라보는 것처럼 파란색이 일렁인다 (이 효과를 주기 위해 바닥 처리를 해서 작품을 절대 밟으면 안된다고 하니 주의하자). 바람 한 점 없이도 눈 앞에 일렁이는 작품을 보고 있으니, 경험으로부터 생긴 두려움을 이겨내자는 작가의 메세지가 마음 속으로 전해진다. 사막과 바다, 두려움과 망설임. 사막을 건넜다는 것은 당신이 바다 또한 건널 수 있다는 증거이다.

미술관을 다 둘러보고 잠시 바람을 쐴 겸 옥상 문을 열고 한참동안 밖을 내다보았다. 낮게 깔린 구름 너머로 태양이 살짝 보인다. 그렇다, 시시포스의 운명. 우리는 돌을 더 높은 곳으로 굴리기 위해 산 정상에서 다시 돌을 떨어뜨린다.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다.

광고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