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여행 01. 통인동 이상의 집

올해 초 엄마와 함께 종로여행을 떠났다. 가을학기동안 논문을 쓰다보니 이상의 집에 방문해보고 싶었기도 했고, 대림미술관에 코코 카피탄 전시회도 있다고 해서 7119번 버스를 타고 광화문 앞에 내려서 종로 한 바퀴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걸었다. 당시 지독하게도 춥던 서울의 겨울도 벌써 다 지나가고 이 글을 쓰는 지금 엘에이의 한낮은 벌써 베이징의 초여름과 같이 무덥기 그지없다.

버스에서 내리니 낯익은 세종대왕 동상이 눈에 보인다.

광화문 앞 신호등을 건너서 왼쪽으로 쭉 간 후에 다시 위로 걸어올라간 뒤 골목으로 들어가면 이상의 집이 나온다. 그나저나 광화문 앞에는 항상 차도 사람도 많다. 크리스탈은 내가 도로 표지판을 주로 사진에 담는다며 나보고 도시를 꽤나 좋아하는 것 같다고 하는데, 글쎄. 어쩌면 내가 특별히 표지판을 좋아하는걸지도 모르겠다.

지나가다 본 추억의 달고나.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 앞에서 매일 별별 모양의 국자로 달고나를 누른 뒤에 이쑤시개로 찍어서 모양을 만드는 재미가 있었는데. 이제는 도라에몽에 라이언 모양까지 나오는게 귀여워서 더더욱 눈길이 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이상의 집을 들르기 전에 먼저 유명한 메밀국수 집에 들러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나는 사실 친구들과 다니다보면 끼니를 거를 때도 많고 규칙적인 식사에 대해 크게 상관은 안하는데, 엄마는 나와 생각이 다른 것 같다. 엄마랑 데이트를 하는 날이면 무조건 삼시세끼를 모두 잘 챙겨먹는다. 이건 불변의 진리다. ㅋㅋ

메밀전병은 진짜 맛있었다. 완전 강추! 부드럽게 바삭하면서도 짜지 않고 정갈하다. 그럴 일이 있을까 싶지만 (한국 친구들은 매번 일산이나 강남에서 만나고 외국인 친구들도 강남이나 가로수길을 그렇게 가보고 싶어한다.) 친구들과 만약에 종로로 여행을 온다면 이 집에서 꼭 같이 메밀전병을 먹고 싶다.

늘 그렇듯 엄마는 매콤한 맛 나는 싱거운 맛의 국수를 주문했다. 이 정도 가격에 쪼그만 전복까지 나오다니 극혜자 식당이 틀림없다. 맛도 굉장히 좋았다.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들이라면 짜증을 내고 나오겠지만 평상시에 간이 심심한 음식을 참 좋아하는 나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이상)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완밥했다. 포장문화에 익숙해서 밖에서 완밥을 잘 하는 경우가 없기에 내가 완밥을 했다면 내 입맛에 완벽히 맞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이상의 집을 들르기 전에 운동할 겸 통인시장을 먼저 들렀다. 시장에 와보니 예전에 엄마 따라 자주 들르던 인천의 재래시장 혹은 김천의 황금시장이 떠오른다. 물론 그 시장들에 비하면 간판도 정형화되고 여러모로 깔끔한 느낌을 주지만 코스트코나 이마트 트레이더스 세대인 나에게 아직 재래시장은 물건을 사는 곳보다 보지 못했던 새로운 물건을 파는 놀이터의 느낌이 더 강하다. 참 다른 의미로의 au magasin de nouveautes 다.

문방구 사탕들. 건강한 음식을 선호하는 나도 가끔씩은 이런 불량식품이 엄청 땡길 때가 있다.

이상의 집으로 가는 골목에 들어서자 오래 되어 보이는 세탁소가 눈에 띈다.

드디어 도착한 이상의 집. 그동안은 공사 중이었는데 다행히 내가 방문하기 하루였나 며칠 전에 보수를 끝내고 새로 오픈했다고 한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벽에 그려진 평면도가 보인다. 실제로 이상이 그린 그림인지 여부는 불확실하나 건축가였던 이상을 기리는 집에 잘 어울리는 그림이다.

당신은 참말로 짧은 생에 비해 가리는 것 없이 다작 多作 하였네 그려.

옆을 보니 통유리 너머로 이상의 동상과 보라색 꽃이 보인다.

집 2층으로 올라가보면 두꺼운 문에 동그란 구멍이 뚫려있고 그 사이로 한 줄기 빛이 얼굴 위를 비춘다.

문을 열고 나가보면 골목과 더불어 집 전체가 한 눈에 보인다. 베이징의 후통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의 서울 골목길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보이는 이상의 동상. 문을 열고 전경을 볼 때는 별 감흥이 없다가 이 동상을 내려다보는 순간 정말로 묘한 느낌이 들었다.

문을 닫고 베란다에서 내려와보니 1층과 2층 사이에 위치한 검은 계단방에서 이상에 대한 소개 영상이 상영 중이었다. 통동은 지금의 통인동. 이상은 태어나자마자 2살이 채 되지 않은 해에 친가족을 떠나 백부의 집에 들어가 그의 양자로 살게 되었다.

작가로서 그의 커리어에서의 전환점이 된 구인회 활동.

그가 기억을 더듬어 회상하던 곳을 나는 지금 오감 五感 으로 체험하고 있다.

— 종로여행 02. 글에서 계속됩니다.

광고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